일루전과 평면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
회화는 평면 안에 시각적 착시, 환영을 부단히 일으키는 일련의 장치다. 일루전 즉 환영이란 보는 이가 눈앞에 제시된 어떤 대상과 연결시키는 일이며 그것은 일종의 착시와 같은 시각현상을 뜻한다. 그 일루전을 억압하든 그것을 극대화하는 회화란 결국 시각적 환영에 대한 욕망을 그 기저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식으로든 일루전에 대한 의식이 회화에서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최필규는 화면에 흰색의 종이 띠 조각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실재의 종이 띠가 부착되어 있다고 여겨지지만(혹은 실제 천이 구겨져있다고 보고 있지만) 실은 그것은 그려진 그림이다. 우선 그것이 종이임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종이에 대한 기억, 경험을 근거로 한다. 그림은 우리가 그 사물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억, 경험에 근거해 환영을 만든다. 흰색과 종이의 표면에 생긴 주름과 음영 등에 의거해 종이임을 상상하는 것이다. 종이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화면에 그려진 것이 종이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다. 작가는 종이를 콜라주하거나 레디메이드로 다룬 것이 아니라 일련의 극사실주의의 회화적 연출을 통해 그려졌다. 표면에 물감을 분사한 흔적으로 이루어진 자취가 종이를 연상시켜 준다. 마치 사진이나 실크스크린으로 밀어낸 이미지, 혹은 복사로 만든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다분히 기계적 재현에 의해 산출된 이미지 같다는 말이다. 아마도 에어 브러쉬의 사용으로 인해 물감과 붓질의 흔적과 질감 등이 희박해졌기에 그럴 것이다. 그로인해 회화의 평면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직선의 막대, 종이가 줄지어 도열한 현상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일정 크기로 잘라낸 종이막대가 겹쳐 쌓이거나 줄지어 있는 구성적 변주다. 일정한 질서로 종이 띠가 나열되거나 또는 광목 천이 구겨져 있는 상황이다. 화면에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천 자체를 구기고 펼쳐놓음에 따른 자연스런 흔적이 실재처럼 놓여있다. 마치 화면 자체가 실제로 주름을 짓고 구겨져 있다는 착각이 든다. 다분히 평면과 모티프가 일체화된 시각적이며 개념적인 평면회화다. 찢기고 구겨진 모종의 상황성이 표면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어서 그것은 작가의 행위, 몸짓, 시간 등을 암시한다. 천을 구기고 종이를 자르고 겹쳐서 만든 흔적이고 제스처가 그림이 된 것이다. 그로인해 평면구조에서 모종의 시각적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 회화가 되었다. 더 나아가 작가는 화면 사이에 대나무(오브제)를 부착하거나 인공의 바람과 영상, 천의 나부낌을 공간에 연출하는 설치로 확장시키고 있다. 평면 회화에서 벗어나 통감각적인 차원으로, 다차원적인 공간 구성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최필규의 그림은 종이라는 환영과 캔버스의 평면 사이에서 ‘놀이’한다. 보는 이의 시선을 건드리고 사물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자극하는 동시에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인 평면성을 유지해나가는 전략에서 나오는 그림이다. 주어진 화면의 평면성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사물, 이미지의 일루전을 끌어들이는 셈이다. 1970년대의 극사실주의와 평면성 논의 그리고 이후 한국적 전통과 무속에 대한 관심 및 오브제와 설치로 확장되어 가는 추이를 그의 작업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한편 작가는 종이/한지와 광목, 대나무 등을 소재를 통해 한국적 전통문화, 무속적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그것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한국 문화의 원형에 대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접했던 무속의 한 장면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은 것이다. 외할머니댁의 대청 대들보에 걸려 있었던 하얀 성주대의 창호지에 대한 신비스러운 느낌과 주술성이 그를 사로잡았다고 한다. 성주신은 집 안의 여러 신을 통솔하면서 가내의 평안과 부귀를 관장하는 가신이다. 성주제는 집을 수호하는 신령(神靈)인 성주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가정 신앙의 한 형태이다. 이를 ‘성주 제사’라고도 한다. 성주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명칭이지만 모시는 형태에 따라 ‘부루단지’, ‘성주군웅’, ‘성조’ 등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성주의 표상으로는 창호지를 10㎝×17㎝ 크기로 네모로 접고 그 속에 쌀이나 돈을 넣어 대들보 밑 벽에 나무못으로 네 모서리를 고정시켜 얹어 놓는다. 이어 술과 떡, 과일과 함께 차려놓고 제사를 드린다.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는 무당을 불러 성주굿을 크게 벌이기도 한다. 대부분 한지를 접어서 그 안에 쌀과 돈 등을 넣어 두는 한지형 성주를 모시는가 하면 한지를 물에 적셔서 대들보에 붙여 놓거나 물에 적시지 않고 대들보에 올려 두거나 종이 상자에 담아 두기도 하는 의식을 접한 그는 자연스레 한지와 종이 찢기를 작업에 응용하게 되었다.
그는 흰 종이를 찢어가면서 유년의 추억을 되살리고 그 당시 접한 신묘한 기운과 분위기를 추체험한다. 그 때를 떠올려주는 매개로 종이와 천, 대나무와 바람은 동반된다. 조상들에게 종이는 단지 문자를 기재하는 단순한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신을 부르는 매개로 쓰이기도 하고 주술적 물건이기도 했다. 대나무도 그렇다. 따라서 작가에게 지금의 작업은 즐거운 놀이이자 묘한 쾌감(찢고 구기는 방법론)을 동반하는 일이자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 유년시절에 접했던 한국 기층문화의 흔적,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연스레 번져나간 한국 문화의 원형에 대한 탐구에 해당하며 아울러 그가 학습한 모더니즘과 하이퍼 리얼리즘에 의한 회화의 평면성과 일루전에 대한 논의, 그리고는 그 위에 영상과 설치 등의 확장된 방법론과 연출 등의 여러 요소들을 다층적으로, 복합적으로 껴안으면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최필규의 작업 안에는 1970년대부터 이후 전개되는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적 기류들이 고스란히, 투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나로서는 그 사실이 무척 흥미로운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Choi Phil-Kyu – Interest in Illusion, Coplanarity, and Traditional Culture
Painting art is a series of devices raising visual and optical illusion and vision on the plane. Illusion is an activity which a viewer connects the objects displayed before his or her eyes. It is a visual phenomenon like some kind of optical illusion. An art maximizing it necessarily contains a desire for the optical vision on its base. It indicates that a consciousness of illusion is inevitable in art in any way.
Choi Phil-kyu fills the canvas strips of white paper on the screen. The strips of paper (or actual strips of cloth) seem to be really attached to the canvas, but they are painted. The reason why they are seen to be real paper strips is that we look at them on the basis of our memory or experience. A picture creates visions based on our memories or experiences of objects. The wrinkles and shades created on the plane surface of the canvas and the white color of the paper make us imagine that they are real paper. Without the experience of the paper we will not assume that the things painted or drawn on the plane are real paper. The artist creates a picture with the method of photographic or hyper realism, not with that of collage or readymade. The traces that look like being sprayed with paints us remind of paper, as if they were images created by copying or silk-screen or photography. In other words, they are like images produced through the representation by mechanical tools. Such effect might have been due to the use of airbrushes, which weakened the trace and feeling of the paint and brush strokes. So the coplanarity of the works of art is intensified much more.
The picture, which gives a feeling of a vision like the lines of straight sticks and paper, is a construction of variations by stacked or lined paper sticks which are cut with a fixed size. It shows a situation where paper bands cut with a fixed size make lines or cotton cloth is crumpled. Events are going on the canvas. The natural traces created by the actions of crumpling and spreading the cloth lie there like actual things. We feel as if the canvas itself were wrinkled and crumpled, which is more about a visual and conceptional art on the flat surface integrating the flat-surface and motif. Some kind of situation is still kept on the surface, ao it implies the artist s action, gesture, and time. The traces and gestures of crumpling the fabrics and cutting overlapping pieces of paper has made a work of art. so it has become an art of painting which creates some kind of visual echo on a flat structure. Furthermore, the artist extends the area of an art by adding the bamboo(object) between the canvas or displaying artificial wind and images, and fluttering cloth in the air. It gets out of the plane art into an inter-sensible dimension, and toward a multi-dimensional level.
Like this, Choi s paintings play between a vision of the paper and the surface of the canvas. They touch the viewer s eyes and stimulates his or her memories and experiences. They come from a strategy to preserve a coplanarity of the plane art, which is a ontological condition of a painting. He creates an illusion without going against the coplanarity of the painting. His painting activity has a clear grain of the trend of paintings extending the interest to the Korean tradition and shamanism and their objects and frameworks after debates on photographic realism and coplanarity in the 1970 s.
Meanwhile, he reminds us of images about the Korean traditional culture and shamanism with materials such as paper or the Korean traditional paper Han-Jii , cotton cloth, and bamboo. They are connected to his childhood s memory and his understanding of an archetype of the Korean culture. He might have gotten some inspiration for his work from a certain scene of shamanism which he witnessed in his childhood. He said he had been attracted to mysterious feelings and charm of the fluttering white window paper, which had been hung on the ridgepole of the main floored room of his grandmother s house. Sungjoo-shin is the main god of a house who controls the peace and wealth of the family, managing other gods living in a house. Sung joo je , which is called sungjoo je-sa . is a memorial rite for the main god protecting the family, which is a type of household worship. Sung-joo is a general name, but the god is said to have been also called Brudanjii , Sungjoogunwoong , Sungjo depending on the types of being worshipped.
The figure of the god was symbolized by a rectangle paper bag with a size of 10 17 , which people put money or rice in and they fixed its four corners with wood nails on the wall underneath the ridgepole. And then they pay a memorial rite with offering wine, rice cake, fruits, etc. Wealthy people ask a shaman to come to their home and do a gut , a big memorial rite with prayer, for the family. Most people worshiped a hanjii-styled sungjooshin in which they put rice and money. and others attached a piece of wet hanjii to the ridgepole, put the hanjii on the ridgepole, or put it in a paper box. He naturally experienced these kinds of rites, and so he came to apply torn papers to his artistic activity.
Through the activity of tearing paper, he brings back bis memory and experience the mysterious energy and atmosphere he experienced in the past. Paper, cloth, bamboo, and wind are accompanied as the media of reminding those days. For our ancestors, paper was not simply a place to write on. It was used as a medium and shamanistic thing calling the god. So was the bamboo. Therefore, the painting activity like this is a work being accompanied by not only a play but also delicate pleasure(a method of tearing and crumpling). It is his memory, a trace of the Korean existing culture he experienced in his childhood, and an exploration about the archetype of the Korean culture. In a complicated and multi-dimensional way, it embraces a debate about the coplanarity and illusion of painting by modernism and hyper-realism he learned, and other elements such as the extended method and display adding images and installations to the surface. Therefore, in Choi s painting work, the main streams of the Korean Modern Art which have appeared since the 1970s are reflected literally and transparently. Such fact is very fascinating me.
Pak yong teak (Professor of Gyunggi University, art critic)